> 지뢰는 삶을 절단한다. :: 쌓여가는 이야기..
반응형


#1. 초록빛 앵무새, 혹은 초록 나비


하늘에서 팔랑팔랑 무언가가 날아 내려온다. 팽그르르 돌다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초록색의 그것. 멀리

서 보면 앵무새 모양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면 나비 모양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초록나비처럼 생긴 예

쁜 장난감을 집에 들고 와서 친구들과 함께 만지작거리며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펑! 하

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아이가 회상하는 초록색의 장난감은 장난감이 아니다. 바로 러시아제 대인지뢰 PFM-1형이다. 아프가니

스탄에서 ‘초록빛 앵무새’라고 불리는 이 무기는 약 10cm 남짓한 길이에 날개가 두 개 달려 있고 한가운

데에는 작은 실린더가 들어 있다. 앵무새보다는 나비와 그 모양이 더욱 흡사한데 저공비행하는 헬리콥

터에서 마치 전단을 뿌려대듯 수천 개씩 뿌렸다. 양 옆에 붙어 있는 날개는 바람을 타서 잘 날기 위한 것

으로 헬리콥터에서 뿌려도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고 광범위하게 살포된다.



전쟁 무기와 지뢰로 인한 부상자 치료와 재활을 돕는 비정부 인도 조직 Emergency의 창설자 중 한 명이

며 전쟁터에서 직접 일하는 외과의사인 지노 스트라다(Gino Strada)에 따르면 그가 수술했던 지뢰로 인

한 부상자 중에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동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어린 아

이였다는 것이다.



이 지뢰는 즉각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짓밟아도 당장에는 작동하지 않는 것도 많다. 폭발하기까지 시

간이 소요된다. 계속해서 손으로 만지작거리거나 날개를 누르면 작동하게 된다. 결국 지뢰를 주운 아이

가 집으로 가지고 가서 식구들과 돌려 보거나 친구들과 돌아가며 놀다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팔을 잃게게 

되고 눈이 멀며 전신 화상을 입기도 한다. 신기한 초록빛 앵무새 혹은 초록 나비는 아이들을 한순간에 

전쟁의 희생자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2. 국제적 지뢰 문제


지뢰는 전쟁 무기의 일종으로 주로 적군이 특정한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

차 세계대전 당시, 탱크처럼 덩치 큰 물건을 날려버리기 위해 대전차용 지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지뢰는 덩치가 커서 적에게 쉽게 발견되었고 제거 또한 간단했다. 그래서 대전차용 지뢰를 제거하기 위

해 접근하는 적군을 막기 위한 대인용 지뢰가 만들어졌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대인지

뢰다.




대인지뢰는 보통 지름 10cm 이하로 발견하기 힘들고, 색깔과 모양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

고 무장이 해제된 뒤에도 대인지뢰는 곳곳에 살아남아 누군가가 와서 밟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런 대인지뢰는 보통 3kg정도의 무게에 반응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모르고 밟을 경우 즉각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람의 발목을 절단하게 만드는 일명 ‘발목 지뢰’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까

지 그 위력은 다양하다. 지뢰는 적군 병사의 발목과 뛰어 노는 아이들의 발목을 구분할 줄 모를 뿐더러, 

전쟁이 끝났는지 평화협정을 맺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전쟁에서 병사들 못지않게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죽고 다치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병사 한 명을 

죽이는 것보다 미래에(때로는 현재에도) 병사가 될 수 있는 어린 아이를 없애고, 나아가 후일 여러 명의 

병사를 낳을 수 있는 여자를 없애는 것이 더 낫다고 계산하는 것이다. 게다가 무장하고 있는 현재의 병

사를 죽이는 것보다 비전투원인 여자와 아이들을 살상하는 것은 훨씬 쉽다. 냉엄한 전쟁의 손익 계산 아

래 비전투원을 쉽게 죽이는 방법으로 지뢰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초록 나비만이 아

니라 아이들을 해치기 위한 다양한 지뢰가 있다. 군인들은 방화와 침략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떠날 때 

곰 인형이나 책을 두고 떠난다. 폭격과 약탈을 피해서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올 때, 아

이들은 인형을 보고 반가워하며 달려가서 끌어안는다. 그러면 곰 인형 속의 지뢰가 작동하여 아이는 온 

몸이 터져 죽게 된다. 인형과 책은 아이들이 적군 또는 반군으로 자라지 못하게, 어른이 되어 자신들에

게 복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악마의 선물이다.




1천만 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시골 마을에는 무덤가와 우물 주변에 특히 지뢰

가 많이 살포되어 있다. 우물은 생존을 위해 매일 가야 하는 곳이고 무덤은 가족과 친지가 죽었을 때나 

죽은 뒤 그리울 때 찾아가는 곳이다. 이러한 생활 동선을 악용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악랄한 지뢰 살포는 계속된다. 사람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생존과 가족

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제 발로 황천길에 들어서게 된다. 




지뢰 제거 작업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시간,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필요한 일이

다. 지뢰 한 개를 생산해서 매설하는 데에는 5달러면 충분하지만 이를 안전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 

천 달러가 소요된다. 게다가 제거되고 있는 수량보다 훨씬 많은 지뢰가 다시 묻히고 있다는 점이다. 지

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7년 ‘대인지뢰 금지협약’이 맺어졌는데 어떤 협약이며 우리의 입장은 어떠

한지 알아보자.






#3. 대인지뢰 금지협약, 그리고 국내의 지뢰 문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루어진 군비 축소(arm reduction)를 위한 교섭은 대개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주

도했다. 그러나 대인지뢰금지협약은 국제지뢰금지운동 ICBL(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

에 가입한 천 여 개의 NGO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이들은 국제적십자위원회,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

를 참여시켜 전 세계적인 대인지뢰금지여론을 만들어내고 그 성과로 1997년 9월 오슬로에서 89개 정부

가 지지한 대인지뢰금지협약문을 채택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오타와에서 서명식을 가졌다. 이 협

약에 따르면 모든 당사국은 협약 발표 4년 이내에 모든 대인지뢰 비축분을 폐기해야 하고, 10년 이내에 

이미 배치된 대인지뢰를 폐기할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 추가로 10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 1997년 국제지뢰금지운동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많은 사람들이 민간인과 군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인지뢰를 금지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아직 이 협약에 서명하

지 않은 상태이다. 미국은 아직 휴전 중인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상황을 들어 주한미군 및 한국 병력을 

보호하기 위해 한반도 예외조항을 넣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한국이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고 있는 한미 양국정부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근거를 지닌다. 첫째, 한반도에서 대인지뢰는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에만 매

설되어 있고, 비무장지대는 철저하게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분쟁지역과 달리 민간

인 피해가 거의 없다. 둘째, 북한이 침략해 들어올 경우 지뢰가 조기경보장치의 역할을 하며, 북한군의 

침략 속도를 늦추어서 군사적 손실을 줄일 수 있고 주한미군을 보호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등에서는 다음 근거를 들어 한국도 대인지뢰 금지협약에 가입해야 한다

고 말한다. 첫째, 비무장지대가 아닌 부산 중리산, 경남 양산 원효산, 포항 봉화산, 충남 홍성 제기산 등

과 같은 후방지역에서도 대인지뢰에 의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200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000년 10월까지 지뢰피해자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모두 155명

이며 그 중 군인피해는 80여명이고 민간인 피해는 75명이다. 또한 같은 해 외교통상부 국정감사에 따르

면, 비무장지대를 제외한 후방지역 34곳 4만 제곱미터에 대인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대인지뢰가 비무장

지대 안에만 매설되어 민간인 피해가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대인

지뢰가 북한의 침략을 억제하고 북한의 침략을 지연시킨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그 역효

과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단체들은 전쟁 중 미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베트

남군의 화기가 아니라 미군 스스로 설치한 미국산 지뢰였으며, 실제로 베트남전의 경우 지뢰로 사상한 

미군 6만 4천명 가운데 90%가 미군이 매설한 지뢰 또는 미군이 빼앗긴 지뢰부품으로 만들어진 무기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한미연합사 야전군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홀링 워스 장군과 같은 군사

전문가들도 대인지뢰가 오히려 군의 자유스러운 기동을 방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밀한 무기 개

발과 정보경고체제의 개선을 통하여 지뢰가 없이도 비상상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지뢰의 필

요성은 크게 감소되었다.




한미 양국 정부가 대인지뢰 금지협약에 서명하지 않는 근거는 그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대인지뢰

의 개념에는 대전차용 지뢰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므로,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해도 대전차용 지뢰를 

통하여 충분히 군사적 방어 기능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다시 한 번 협약을 토의하고 우

리의 현 상황에 대해 파악한 다음, 전 세계적으로 평화스런 지구촌을 건설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인도주

의적 움직임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지뢰, 땅 속에 숨어있는 파멸의 독가시


대인지뢰는 인간의 증오와 적개심을 자양분으로 하는 녀석이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며, 전시와 평시를 구분하지 않고 군인과 민간인, 심지어 어린이라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움직이는 

생명체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치운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 뿌려진 대인지뢰는 1억 1천만 개, 이로 

인해 1년에 2만 8천 건의 지뢰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매달 2천 명의 민간인이 다치거나 사망하고 있으며 

20분마다 피해자가 한 명씩 생기는 인류 공동의 적이다.




캄보디아에는 인구 한 명당 하나 꼴인 모두 천만 개의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전이 끝나면서 

외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이 심했던 지뢰 매설지역을 중심으로 지뢰 제거작업을 벌였고, 비정부기구의 

지원을 받아 지뢰제거요원 3천 명이 매일 지뢰제거를 하며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바꾸고 있다. 하

지만 플라스틱 대인지뢰는 지뢰 탐지기로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에 지뢰 탐지봉을 이용하여 45도 각도

로 찌르고 또 찌르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캄보디아 지뢰제거요원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지뢰밭을 생명의 땅으로 바꿀 수 있는 면적은 사방 1미터, 불과 0.5평이 불과하다. 이렇게 지난 93년부터 

지금까지 제거한 대인지뢰는 11만여 개. 천만 개의 지뢰를 찾기에는 앞으로 몇 백 년이 걸릴지도 모른

다. 게다가 절대 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는 이 나라에서, 지뢰밭에 살고 있는 캄보디아 농

민들은 위험을 안고 살면서도 거주지를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인구 400명 당 1명이 지뢰피해자인 캄

보디아는 어쩌면 그래도 우리보다 지뢰문제에 있어서는 희망이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한 개의 

지뢰라도 더 제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DMZ는 지뢰 매설 밀도에서 세계 최고이다. 지뢰제거는 냉전의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만큼

이나 어렵고 힘든 작업임을 남북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남북의 허리를 둘로 갈라놓은 철책선은 걷어 버

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지뢰는 그 특성상 단시일 내에 제거할 수 없다. 분단과 냉전의 세월 속에서 살기

와 분노를 먹고 자란 대인지뢰 독버섯은 이제 남북한이 힘을 합쳐 평화라는 백신으로 캐내야 한다. 이제 

비무장지대는 더 이상 지뢰로 가득한 무장지대가 아닌 이름 그대로 비무장지대가 되어야 한다. 또한 강

원도, 경기도 북부를 포함하여 후방에 매설되어 있는 수많은 지뢰들도 함께 제거되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 땅의 대인지뢰 제거를 위하여 노력할 때, 지구 반대편에서 아이들에게 초록 나

비를 뿌리는 이들을 비난하고 무절제한 지뢰 살포와 매설을 그만두고 평화를 찾자고 말할 자격이 생길 

것이다. 


출처 : http://www.uniteearth.net/site/magazine/article_view.html?v=16&n=147

Lee, Boram / LBR122@naver.com
반응형
그리드형

+ Recent posts